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 (문단 편집) === [[부동산]] === 우주 한복판을 날고 있었던 [[주식]] 거품은 [[부동산]] 거품으로 합리화되었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토지 가격이 50배 정도 뛰는 동안 소비자 물가 지수는 고작 2배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즉, 땅값의 실질 가치가 25배 급등한 것으로, 이 때문에 일본 사회 전반에 토지 불패 신화가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오르기는 해도 절대 떨어지지는 않는다"는 당시 일본 부동산 버블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지가가 상승하던 와중에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6%에서 2.5%까지 떨어뜨리자 [[은행]]들은 대출 경쟁을 벌였다. A은행에서 8% 금리를 제시하면 옆 B은행에 가서 7.5% 대출을 제안받고 다시 그 옆 C은행에서 7% 대출을 받아 가며 토지 투기가 벌어졌다. 당시 [[LTV]]는 200%까지 치솟았다.[* 시장 가격 10억짜리 땅을 가지고 있으면 20억까지 대출해 준다는 소리. 물론 은행들이 '언젠간 2배가 될 거니까 그 정도 쯤 쳐줘도 된다'는 생각에 이런 담보율을 설정했다고 단순화시킬 수는 없다. 타 은행과의 경쟁, 실제 파산 비율 등도 고려해야 하니까. 하지만 그런걸 감안해도 LTV 200%는 그만큼 은행이 자신이 있었다는 뜻이고 당시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2020년대 한국 [[LTV]]는 50% 내외다.] 이는 토지만 있으면 지가의 2배에 달하는 대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과연 은행들이 그만큼의 돈을 실제로 가지고 있었을까?''' 이렇게 대량의 자금 수혈이 가능하다 보니 아직 저렴했던 땅에 돈이 풀리며 지가를 올리고, 이 토지를 담보로 또 지가보다 더 많은 자금을 끌어오고, 이 돈으로 다른 저렴한 땅을 사고, 사 놓은 땅의 지가도 계속 오르니 추가 대출이 가능하고... 이렇듯 터지기 전까지 화수분처럼 불어나는 게 자본 버블의 특성이다. 이렇게 점점 [[미나토구(도쿄)|미나토구]]를 중심으로 시작된 부동산 광풍은 도내를 넘어 도쿄 광역권 전체에 휘몰아쳤다. [[요코하마시]], [[가나가와현]], [[사이타마현]], [[치바현]] 등... 더 무서운 건 이 중 치바와 사이타마는 거품 붕괴 이후에도 지가가 요지부동이다. 이러다보니 [[도쿄도]] 이외도 무사할 수 없어 [[오사카시]]에서 [[케이한신]]권으로, [[나고야시]]에서 인근 광역권으로 등등 일본 전역에서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다만 [[농촌]]은 제외. 도심에서 먼 지역을 보면 당시 소득 대비 큰 거품이 끼었다고 보기 어렵다. 산골은 말할 것도 없고... [[아라카와 히로무]]의 [[백성귀족]] 6권에서 이 당시 분위기를 전하는데 '''워낙 깊은 산골짝이라 땅값이 한 푼도 안 올랐다고''' 말하는 작가 아버지와 '''이놈의 땅을 [[긴자]]에 들고 가서 팔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하는 작가 어머니의 표정이 압권.] 거품이 붙는 속도도 어마무시해서 도쿄 지가는 [[1981년]]부터 버블 붕괴 직전인 [[1990년]]까지 5배 이상 폭등했는데 이 중 대부분은 [[1987년]]~[[1988년]] 1년의 '''3배''' 상승분이다. 당시 '''"[[도쿄도|도쿄]]를 팔면 [[미국]]을 살 수 있다"'''는 농담이 유행하기도 했고[* [[http://www.nber.org/chapters/c8819.pdf|당시 토지 가격을 보자면]] [[미나토구(도쿄)|미나토구]]는 평당 1,900만엔, [[스기나미구]]는 350만엔을 기록했다. [[오사카시]]는 평당 200만엔, [[나고야시]]는 85만엔, [[후쿠오카시]]는 45만엔까지 치솟았다. 긴자는 평당 1억엔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1980년대에!''' 그리고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20년 동안 지속적인 [[디플레이션]]을 겪었기 때문에 실질 가치는 명목상의 1,900만엔보다 '''훨씬 높았다'''.][* 미나토구 중에서도 아자부나 아오야마 같은 곳은 평당 5,000만엔에 육박했다. (출처:상기한 KBS스페셜)] 당시 도쿄 [[고쿄]](황거) 지가가 '''[[캘리포니아]] 주, [[캐나다]] 전체 지가'''와 맞먹었다.[* 현재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약 한화 2조 2천억원 정도의 규모다.] 그리고 유독 무시무시한 폭등을 이어간 지역이 있는데 [[도쿄메트로]] [[긴자선]] 연선 지역이 여기에 속한다. 특히 신바시, 아사쿠사 같은 동네는 무려 10배 이상, 아오야마는 15배나 폭등해서 신기록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이 시기에 민영화된 국철은 부채 청산을 위해 [[시오도메역|시오도메 화물역]] 부지[* 현재의 시오도메 시오사이트 부지.] 매각 사전작업을 진행하였으나 지나치게 높은 토지 가격으로 인해 과열 경쟁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매각 보류되었다. 그런 이유로 화물역 기능이 철거된지 10여년이 지난 [[1997년]]에 들어서야 겨우 개발될 수 있었다. 땅값이 워낙 높아진 탓에 도쿄의 상업용지값은 거품이 터지기 이전인 80년대 말에 하락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건 역으로 따진다면 암만 월급이 올라도 집을 사기에는 택도 없다는 셈이므로 당시 내 집 마련을 꿈꾸던 당대 일본 월급쟁이들에게 상당한 재앙이었던지라 [[http://money.cnn.com/magazines/fortune/fortune_archive/1990/05/21/73567/|'''100년''' 만기 대출]] 같은 황당한 상품이 등장하기도 했고,[* 그러나 부동산 거품이 최고조에 달한 [[2022년]] 한국에서도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상품이 등장하면서 일본의 버블경제를 떠오르게 했다.] 이 때문에 [[치바현]]이나 [[사이타마현]], [[가나가와현]], 도쿄 중서부 지역[* 타마 지역. 이 지역은 한국으로 친다면 [[1970년대]]-[[1980년대]] [[강남구]]나 [[노원구]] 비슷한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이바라키현]] 남서부 지역이나 신칸센 [[역세권]] 지역[* 일본의 교통비가 비싸다 보니 직장에서 교통비를 별도로 내 주는 게 관행인데 이를 이용해 직장에서 신칸센으로 출근해서 집세와 집값을 아끼는것이다. 다만 이런 게 없는 직장에 다닐 경우에는 비싼 신칸센비를 다 내야 해서 일반전철을 타야 했다. 일본에서 [[히키코모리]] 현상이 한국보다 두드러지게 심각한 이유 중 하나였다.]의 인구가 급증하기도 했다.[* 하지만 버블 붕괴 후엔 상황이 반전되어서 상속을 받았다가 거액의 세금을 무는 바람에(이 경우에는 버블 시기에 재산 신고해서 서류상 재산은 빠방했는데 막상 상속받을 시기가 되자 부동산이 팔리지 않아 애물단지가 되어 버리고 설사 부동산이 팔리더라도 엄청나게 손해를 보기 때문에 세금 감당도 못 할 지경이 되면서 결국 파산하게 되는 것) 파산하는 일이 잦아서 상속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공공 임대 아파트의 공급은 이에 훨씬 못 미쳤기에 청약 경쟁률이 턱없이 높았다. 당연히 [[난개발]] 지역도 땅값이 폭등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더 심각한 것은 버블이 꺼진 후에도 [[사이타마현|사이타마]]나 [[치바현|치바]]의 땅값은 그리 떨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미 [[도쿄도|도쿄]]에서 한 번 유출된 인구가 복귀하지 않으면서 교외 지역 수요층으로 편입된 것이다. [[1981년]] 대비 [[1991년]](버블 붕괴 시작할 때)의 사이타마나 치바 땅값은 3~4배 정도 상승했는데 2020년대에도 그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대기업]] 종사자는 보너스가 왕창 나오던 시절이었고 중소기업도 인력 부족으로 봉급이 올랐기 때문에 '''집을 사는 것만 포기하면 풍족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잔뜩 껴 있었지만 그래도 다른 실물경제가 성장을 하고는 있었으니까. 그래서 당대 [[일본/문화|일본 문화]] 산업이 전례없는 호황이었던 것도 이런 영향이 크다는 의견도 있는데 암만 월급 모아 봤자 집을 살 수는 없으니 포기하고 문화 생활이라도 즐기려는 [[욜로족]]이 많아서 그런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시티 팝]]과 같은 일본 대중음악의 발전이 있다. 오늘날 [[도쿄도|도쿄]], [[오사카시|오사카]] 등 일본 [[대도시]]의 주요 거점 [[스카이라인]]은 대부분 이 시기에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주쿠구|신주쿠]], [[시부야구|시부야]], [[이케부쿠로]], [[롯폰기]], [[우에노#s-2|우에노]], [[오다이바]](이상 도쿄), [[우메다#s-2|우메다]], [[난바]], [[텐노지구|텐노지]], 쿄바시(이상 오사카), [[나카교구|나카교]](교토),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미나토미라이]](요코하마) 등. [[1990년대]] 이후에 완성된 일본 주요 대도시 상업 지구는 신주쿠, 시부야, 우메다, 난바 정도를 빼면 [[1981년]]까지만 해도 빈민가나 놀고 있는 공지였다. 땅값 폭등으로 이 동네에 주거 지구를 남겨두는 것보다 상업 지구로 철저하게 [[재개발]]하는 것이 몇 배나 남는 장사가 되면서 부동산개발 회사가 난립했고,[* 개중에는 '지아게야'라 해서 야쿠자가 운영하는 개발 회사들도 많았다. 이 경우 굉장히 폭력적인 방법까지 동원해서 억지로 땅을 사들였기 때문에 원주민 입장에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https://news.joins.com/article/2842002|#]]. 만화 [[드래곤볼]]에서 수하들을 동원해 행성들을 정복하는 악당 [[프리저]]는 이런 개발사들을 모티브로 삼았다.] 이 회사들이 자체 [[도시계획]]을 짜고 부지를 [[지방자치단체]]나 소유주로부터 사들인 뒤 [[1986년]]부터 전부 오피스 지구로 재개발하게 된 것.[*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이런 상황이면 공공기관에서 토지 수용 후 전면 개발한다. 공공의 수용이므로 감정가의 2배 이내에서 수용가가 결정된다. 반면 [[일본]]에서는 공공의 수용이 아닌 민간이 토지를 다 사야 하므로 개중에 몇 몇 알박기 등으로 인해 토지가가 무한정 올라갈 수 있다.] 한국의 건설사가 자체적인 도시 개발 능력이 뒤처지는 데 비해[* 한국은 일개 건설사가 독자적으로 도시 개발을 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보통 [[한국토지주택공사]]나 지방공사가 도시개발을 하고 건설사는 단지 시공만 한다.] 버블 붕괴에서 살아남은 일본 건설사는 자체적인 도시 개발 및 건축 기술을 축적하여 [[1990년대]] 이후에도 전세계적으로 [[신도시]] 개발 수주를 따내고 있다. 파산한 부동산 업계와 건설사의 [[미분양]] 물량까지 살아남은 회사들이 인수하여 완공한 것이 [[2000년대]] 이후의 일본의 스카이라인이다. [[용과 같이 제로]]의 발단이 바로 '''한 평의 공터'''라고 나오고 그를 둘러싼 [[야쿠자]]들이나 부동산 업자 등 땅을 가지고 수많은 인물들끼리 서로 주먹을 동원하며 전쟁을 하는 모습을 보면 그 당시에 부동산 투쟁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